퇴직을 전후한 시기에 부모님과 자녀를 동시에 돌봐야 하는 상황, 흔히 ‘더블케어’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흔히 인생 2막을 온전히 나 자신을 위한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자녀는 다 컸고, 회사에서의 역할도 정리되었으니 이제는 나와 배우자를 돌아볼 차례라는 기대입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실제로는 나이 든 부모님의 건강이 갑자기 나빠지고, 동시에 아직 독립하지 못한 성인 자녀의 생활까지 챙겨야 하는 시기와 맞물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균 서울연구원장은 한 정책 포럼에서 “중장년은 돌봄과 일, 여가, 노후 준비 등 여러 생애과제가 중첩되는 동시에 개인별 삶의 여건과 경로가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는 중요한 시기”라고 짚은 바 있습니다.
이 글은 더블케어를 겪는 분들에게 정답이나 해결책을 제시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이 상황이 나만 겪는 유별난 일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기댈 수 있는 제도와 자원이 어디에 있는지를 함께 살펴보려 합니다.
더블케어, 왜 지금 주목 되나
더블케어는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를 동시에 부양하는 상태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육아와 노인 돌봄이 겹친다는 뜻에서 만들어진 말이지만, 최근에는 성인이 된 자녀와 노부모를 함께 부양하는 중장년층의 상황을 설명하는 말로도 널리 쓰이고 있습니다.
평균 수명은 길어지면서 아프고 노쇄한 80대 이상의 고령 부모를 돌봐야 하고 청년들의 취업난과 경제적 부담은 결혼 시기를 30~35세 이상으로 늦어지게 합니다. 이러한 사회적 요인에서 비롯된 50~60대 중장년층의 경제적 돌봄이 겹치는 현상이 빚어지고 있는 셈이죠.
이 문제가 새삼 화두가 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서울연구원은 2026년 8월 27일 “서울 중장년 삶 실태와 지원 체계: 취약성을 넘어 다양성으로”를 주제로 중장년 생애전환 지원 정책 포럼을 열고, ‘서울 시민의 더블케어 실태와 지원 방안’을 첫 번째 발표 주제로 다뤘습니다. 획일적인 지원이 아니라 개인별 삶의 경로에 맞춘 다양한 지원 체계가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에서였습니다.
퇴직이라는 큰 전환점 위에 돌봄이라는 또 다른 과제가 겹치는 것, 어쩌면 이 시기를 지나는 많은 분들에게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목격하는 이미 익숙한 풍경일 수 있습니다.
숫자로 보는 이중부양의 현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KIHASA)이 2018년 실시하고 2019년 5월 발표한 ‘중장년층 가족의 이중부양에 대한 실태조사’는 이 주제를 전국 단위로 들여다본 사실상 유일한 공식 조사입니다.
조사 대상 중장년 1,000명 가운데 39.5%가 25세 이상 미혼 성인 자녀와 노부모를 동시에 부양하는 이중부양 상태였고, 한쪽만 부양하는 단일부양은 37.8%, 부양 부담이 없는 경우는 22.7%였습니다.
중장년 10명 중 4명이 이중부양을 짊어지고 있었던 셈입니다.
가구 형태에 따라서도 차이가 뚜렷했습니다. 3세대가 함께 사는 가구는 51.9%가, 부부와 미혼 자녀가 함께 사는 가구는 47.4%가 이중부양 상태였습니다. 부부만 사는 가구는 26.1%, 1인 가구는 7.4%로 상대적으로 낮았습니다.
연령별로 보면 55~64세에서 이중부양 비율이 48.7%로 가장 높았고, 45~54세에서는 오히려 단일부양(46.4%)이 더 많았습니다. 은퇴가 가까워질수록 돌봄의 무게가 더 커진다는 뜻으로 읽힐 수 있습니다.
여성에게 더 무겁게 다가오는 이유
성별 차이도 눈에 띕니다. 여성은 이중부양 46%, 단일부양 32.6%였던 반면, 남성은 이중부양 32.2%, 단일부양 43.7%로 나타났습니다. 여성의 이중부양 비율이 남성보다 뚜렷하게 높았던 것입니다.
소득 수준과 이중부양 비율이 함께 올라가는 경향도 확인됐습니다. 월소득 200~299만원 구간에서는 33.8%였던 이중부양 비율이 800만원 이상 구간에서는 56.1%까지 높아졌습니다. 소득이 있을수록 부양의 여력도, 부양의 요구도 함께 커지는 흐름일 수 있습니다.

부양에 들어가는 실제 비용
경제적 부담은 수치로도 확인됩니다. 이중부양 가구가 성인 자녀와 노부모에게 지원하는 현금은 2018년 기준으로 봤을때 월평균 115만5천원(정기 지원 65만3,600원, 비정기 지원 50만4,100원)이었고, 이는 해당 가구 가계소득의 17.7%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습니다. 소득의 6분의 1가량이 돌봄과 부양에 쓰이고 있었던 셈입니다.
다만 이 통계는 2018년에 조사된 자료로, 2026년 현재 기준으로는 약 7년 전 수치라는 점을 짚어둘 필요가 있습니다. 서울연구원이 2026년 8월 27일 포럼에서 발표한 ‘서울 시민의 더블케어 실태’ 자료가 더 최신이고 지역 특화된 데이터일 가능성이 크지만, 구체적인 수치는 아직 폭넓게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더 정확한 최근 현황이 궁금하다면 서울연구원 발표 이후의 후속 자료를 함께 참고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 있습니다.
부담만 있는 건 아닙니다
이중부양이라고 하면 힘든 이야기만 떠오르기 쉽지만, 실제로는 조금 더 복합적인 경험이었습니다. KIHASA 조사에서 이중부양 경험자의 50.3%가 이 경험을 통해 어떤 식으로든 변화를 느꼈다고 답했는데, 그 변화가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긍정적인 변화로는 가족 간 협동심과 친밀감이 늘었다는 응답이 23.7%로 가장 많았습니다. 함께 부모님을 살피고 자녀를 챙기는 과정에서 가족이 오히려 더 가까워지는 경험을 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물론 부정적인 영향도 함께 보고됐습니다. 일상생활에 제약이 생겼다는 응답이 16%, 경제생활이 어려워졌다는 응답이 13.7%, 형제자매나 가족 간 갈등이 늘었다는 응답이 11.4%, 부부간 갈등이 늘었다는 응답이 6%였습니다.
힘들다고 느끼는 것도, 그 안에서 가족이 더 가까워졌다고 느끼는 것도 모두 자연스러운 감정일 수 있습니다. 이중부양은 누군가의 잘못으로 생기는 문제가 아니라, 여러 생애과제가 같은 시기에 겹치면서 나타나는 흐름에 가깝습니다.
기댈 수 있는 제도들
더블케어를 혼자 감당해야 하는 것은 매우 벅찬 일일 수 있습니다. 다행히도 이미 마련되어 있는 제도들을 살펴보는 것에서 시작해볼 수 있어요.
가족돌봄휴가와 가족돌봄휴직 활용하기
근로자가 조부모, 부모, 배우자, 배우자의 부모, 자녀 또는 손자녀가 질병·사고·노령을 겪거나 자녀 양육이 긴급하게 필요할 때 신청할 수 있는 제도입니다. 사업주는 근로자의 이 신청을 원칙적으로 허용해야 합니다.
가족돌봄휴가는 연간 최장 10일까지 일 단위로 나눠 쓸 수 있고, 가족돌봄휴직은 연간 최장 90일까지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다만 휴직을 나눠 쓸 경우 1회 기간은 최소 30일 이상이어야 합니다.
신청 시에는 사용 예정일, 대상 가족의 성명·생년월일 등을 적은 문서를 사업주에게 제출하면 됩니다.
2026년 8월 20일부터는 관련 법 개정 사항도 시행됩니다. 공무원의 경우 자녀·손자녀가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입학하기 전 돌봐야 할 때도 가족돌봄휴가를 쓸 수 있도록 범위가 넓어졌습니다.
통합돌봄과 긴급돌봄 서비스 알아두기
혼자서 부모님을 돌보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공적 돌봄 서비스를 함께 활용해보는 것도 좋은 선택일 수 있습니다.
지역사회 통합돌봄은 2026년 3월부터 전국 단위로 시행되어, 노인과 장애인이 병원이 아닌 자택에서 방문의료·방문요양·간호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합니다.
질병이나 사고, 주 돌봄자의 부재 등으로 급하게 돌봄이 필요할 때는 최대 72시간 서비스를 제공하는 긴급돌봄 지원사업도 있으며, 이 사업은 2025년 137개 시·군·구에서 2026년 142개 이상으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가사·돌봄을 바우처로 지원하는 일상돌봄 서비스 역시 2025년 215개에서 2026년 220개 이상 시·군·구로 넓어지는 중입니다.
거주하는 지역의 주민센터나 관할 구청에 문의해보면,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창구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서울시가 마련하는 중장년의 삶
더블케어가 경제적으로 얼마나 무거운 부담인지는, 최근 발표된 다른 조사에서도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서울시50플러스재단은 2026년 6~7월 서울 거주 40~64세 중장년 2,058명을 조사해 국내 최초로 ‘중장년 삶의 질’ 지표를 개발했고, 그 결과를 2026년 8월 20일 공개했습니다.
이 지표는 가구경제·건강·돌봄·노후준비 등 12개 영역, 75개 세부 지표로 구성되어 있으며 탄탄(기초역량), 활력(생활역량), 도약(전환역량) 세 부문으로 나뉩니다.
이 조사에서 눈에 띄는 수치가 하나 있습니다. 자가 거주 가구 기준으로 중장년이 생각하는 월 적정 생활비는 최소 196만원, 적정 321만원, 여유 있는 수준은 540만원이었습니다.
다만 이 금액은 실제로 지출한 내역을 집계한 통계가 아니라, 중장년이 “이 정도는 필요하다”고 스스로 느끼는 수준을 통계로 산출한 값이라는 점에서 기존의 가계 지출 통계와는 성격이 다르다는 점을 함께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수치가 나온 배경에는, 부양이 나 하나만의 생활비가 아니라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의 필요까지 함께 계산해야 하는 현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서울시는 이 지표를 매년 측정해 정책에 반영할 계획이며, 2026년 9월 15일에는 “다양한 중장년, 다양한 일-서울의 해법”을 주제로 한 정책포럼도 예정되어 있습니다.
인생 2막, 다시 설계해보는 시간
더블케어를 겪고 있다고 해서 인생 2막을 준비할 여유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 시기이기 때문에, 미리 알아두면 도움이 되는 자원들이 있습니다.
행복캠퍼스에서 인생 재설계 상담받아보기
경기도는 2026년 1월 27일 ‘중장년부터 노년까지 인생전환기 맞춤 정책’을 발표하며 여러 지원 사업을 확대했습니다.
중장년 행복캠퍼스는 퇴직 후 인생 설계를 고민하는 중장년에게 생애전환교육, 인생재설계상담, 커뮤니티 활동을 제공하는 곳으로, 도 2곳과 시·군 5곳, 센터 31곳에서 운영되며 2025년 한 해 동안 2만1천여 명이 이용했습니다.
서울에서는 서울시50플러스재단이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만 50~64세 서울시민을 대상으로 생애설계 상담과 생애경력 설계 프로그램, 1:1 취업컨설팅을 제공하며, 서울 전역 약 18개소의 캠퍼스와 센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라이트잡으로 일의 속도 조절하기
돌봄과 일을 병행해야 한다면, 근무 시간을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는 일자리를 살펴보는 것도 방법일 수 있습니다.
경기도의 라이트잡은 50~65세 미만 베이비부머를 대상으로 주 15~36시간 미만 근무하는 일자리를 지원하며, 근로자 1인당 월 40만원을 지원합니다. 2025년 기준 617개사에서 2,400여 명이 참여했습니다.
이 밖에도 40~65세 미만 중장년이 지역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인턴캠프(갭이어)가 2025년 120명에서 2026년 150명으로 확대되었고, 65세 이상 취약계층의 간병 부담을 덜어주는 간병 SOS 프로젝트도 2026년 16개 시·군에서 시행되고 있습니다.
행복캠퍼스나 50플러스센터의 프로그램에 실제로 참여해보면, 비슷한 시기를 지나는 또래들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의 경험을 나누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거창한 결심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가까운 행복캠퍼스나 50플러스센터에 한번 문의해보는 작은 시작만으로도, 지금과는 조금 다른 인생 2막의 그림이 그려질 수 있습니다.
마치며
더블케어는 인생 2막을 앞둔 많은 중장년이 조용히 지나고 있는 현실입니다. 통계로 보면 중장년 10명 중 4명이 이 무게를 함께 지고 있었고, 그 무게는 경제적인 부담이면서 동시에 가족이 더 가까워지는 계기이기도 했습니다.
완전한 해결책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가족돌봄휴가와 통합돌봄 같은 제도, 행복캠퍼스나 50플러스재단 같은 인생 재설계 지원처럼 기댈 수 있는 곳들은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을 수 있습니다.
돌봄이 겹치는 이 시기를 잘 지나고 나면, 인생 2막의 방향은 조금 더 선명해질 수 있습니다. 혼자 짊어지지 않아도 되는 무게라는 것, 그것만 기억해도 충분할 것 같습니다.

